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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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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12 20:03 조회1,9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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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이니셜과

아호(雅號) name:관리자 Date:2009/03/30 Hit:936

'예기' 곡례(曲禮)는

"남자는 20세에 관례(冠禮)를 하고 자(字)를 지으며,

여자는 혼인을 약속하면 계례를 하고 자를 짓는다" 라고 쓰고 있다.

관례는 머리에 관(冠)을 쓰는 의식이고,

계례는 비녀를 꽂는 의식인데 '자(字)를 짓는 것은

그 이름을 공경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자는 보통 부모나 존장자(尊長者)가 지어주었는데,

원래는 손아랫사람도 부를 수 있었다.

그렇지만 자(字)도 아랫사람이 부르기를 꺼리게 되면서 호(號)가 사용된다.

당초 호는 세상에 뜻을 잃은 은자(隱者)들이 이름을 감추기 위해서 지었다.

'한서(漢書)' 왕공량공포(王貢兩鞏飽) 열전에는

동원공(東園公), 기리계, 하황공, 녹리선생 4인은

한나라부흥에 공이 있어서 한 고조가 불렀으나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누구나 호를 갖게 되면서 아랫사람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기록상 우리나라에서 가장먼저 호를 사용한 인물은 원효(617~686)로서

'삼국사기'에는 "환속하여 자호를 소성거사라고 했다."고 전한다.

호는 사는 집이나 마을 또는 산이나 하천등을 가지고 짓는 등

 작호에는 제한이 없었다.

다수가 좋아하는 호도 있어서 '한국인명 자호사전'에 따르면

중경은 10명, 자화는 11명, 달부는 12명, 효백은 13명, 대이는 14명, 자고는 15명, 여명은 16명, 호연은 17명, 길보는 18명이 사용했고

 가장많은 명중은 21명이었다.

임금도 호가 있었다.

정조는 홍재이니, 그의 문집이 '홍재전서'인 이유를 자연히 알게 된다.

태조 이성계는 재위 7년(1398) 동북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군신관계를 뛰어넘는 친근감의 표시로 '송헌거사' 명의로 편지를 보냈다.

언제부터인지 유력정치인들을 영문이니셜이나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니셜은 무의미한 발음체계에 불과하고

성인이름 부르기에는 민망하다.

아호를 사용하면 서로 말을 조심할것이니

그만큼 우리 정치의 품격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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